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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 생애, 업적, 가족, 죽음, 청해진

by 싱긋 2023. 5. 31.

 

 

장보고 생애

장보고는 남북국시대 청해진을 설치하여 당나라와 신라, 일본 간 해상무역을 주도한 상인이었습니다. 그의 본명은 궁복 또는 궁파로 활보 즉 활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출생일은 미상이며 846년에 사망했습니다. 장보고의 계통과 출신에 대해서는 기록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그의 본명을 궁복 또는 궁파 라고 적고 있습니다. 일찍부터 친구 정년과 함께 당의 서주로 건너가 그곳에서 승마와 창술에 특출 난 재주를 보이며 군인으로서 출사해 무령군중소장의 직책을 받게 되었습니다. 흥덕왕 3년 828년 초에 신라로 돌아온 그는 왕에게 신라인들이 해적들에게 납치되어 노예로 팔리고 있는 참상을 전하며 군사 거점을 세워 이를 금지시켜 줄 것을 청했습니다. 마침내 승인을 얻어 1만여 명의 군대를 확보한 그는 완도에 청해진을 세우고 대사가 되었습니다. 그의 활약으로 827년 ~ 835년 이후로 해상에서 신라 노예를 매매하는 일이 사라졌다고 신당서 및 삼국사기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장보고 업적

장보고는 청해진 출신으로 지금 날 완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업적을 보면 바다의 왕답게 장보고 대사는 해적을 여러 소탕을 하여 신라를 굳건히 지키며 신라 당 일본의 무역을 주도하고 중국과 이슬람 또한 중계무역을 개척할 정도로 무역왕이었습니다. 그리고 장보고는 당시 신라의 해군기술력을 상당 이상으로 올리는 반면 당시 신라의 해상권을 장악하여 당과 일본뿐 아니라 북쪽의 발해와 탐라, 우산국과 같은 신라의 속국들, 참파, 스리위자야, 마타람 왕국, 크메르 왕국, 라보 왕국, 팔라 왕조, 라슈트라쿠타 왕조, 프리티 하라 왕조, 아바스 왕조 등 남방, 서역 여러 나라와의 무역으로 많은 이익을 취하였으며 아울러 큰 세력을 이루었습니다.

장보고 가족

장보고의 가족에 대한 정보는 기록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장보고 죽음

장보고는 왕위계승 분쟁에 휘말리다가 자객 염장에 의해 암살당하였습니다. 염장은 신라 후기의 무장 겸 정치가로 장보고를 암살한 인물로 유명합니다. 염장은 무진주 출신으로 왕위 다툼에서 패배해 청해진으로 피신한 김우징이 장보고의 힘을 빌려 민애왕을 제거했을 때 김양, 정연 등과 함께 장보고 군대의 선봉장을 맡았으며 달벌대전 등에 참가해 신무왕 옹립에 공을 세웠습니다. 이후 김우징이 신무왕으로 즉위하고 대를 이어 문성왕 때는 무진주 별가로 있었는데 신라 조정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장보고가 이를 원망해 역모를 꾀하려 하자 염장이 장보고를 암살합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장보고는 문성왕 8년인 AD 846년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청해진

청해진은 후기신라 흥덕왕 3년 828년 장보고의 청에 따라 지금의 전라남도 완도군 장도에 설치하였던 진입니다. 초기에는 해적을 방비하기 위한 군사거점으로서 설치되었으며 이후 해상무역의 주요 거점으로서 경제적으로도 번영을 누렸습니다. 청해진은 국제무역의 중심지로 동아시아 무역을 독점하여 번영을 누리며 큰 세력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이후 장보고는 왕위계승과 관련된 권력다툼에 휘말려 자객 염장에 의해 846년 암살당하였고 문성왕 13년 851에 청해진은 폐쇄되었습니다.

청해진 폐쇄

청해진은 국제무역의 중심지로 동아시아 무역을 독점하여 번영을 누리며 큰 세력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장보고가 왕위계승과 관련된 권력다툼에 휘말려 자객 염장에 의해 846년 암살당하였고, 문성왕 13년 851에 청해진은 폐쇄되었습니다. 청해진이 폐쇄된 이유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부 연구자들은 청해진이 그 위력을 두려워한 신라 귀족들에 의해 해체되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청해진 역사적 의미

청해진은 신라 흥덕왕 3년 828년 장보고가 설치한 해군기지이자 무역기지로 전라남도 완도 앞바다의 작은 섬인 장도에 있습니다. 당시 이곳은 신라와 당,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의 중요한 길목이었습니다. 청해진은 국제무역의 중심지로 동아시아 무역을 독점하여 번영을 누리며 큰 세력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장보고가 왕위계승과 관련된 권력다툼에 휘말려 자객 염장에 의해 846년 암살당하였고, 문성왕 13년 851에 청해진은 폐쇄되었습니다. 청해진은 신라 후기 장보고가 서남해안의 해적을 소탕하고 중국의 산동지방과 일본을 연결한 해상 교역로의 본거지로서 중요한 역사적 유적입니다.